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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수씨 사건 무죄 변론'…유재건 전 의원 별세

    미국 유학 중 살인 누명을 쓴 재미교포 이철수씨 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끌어낸 혜천(惠泉) 유재건(柳在乾) 전 의원이 한국시간으로 1일 오전 9시24분께 삼성서울병원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향년 85세.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기고, 연세대 정외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1977년 캘리포니아대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7∼1989년 연방정부 지역사회변호사로 일했고, 1982∼1990년 LA에서 법률사무소를 경영했다.      고인이 이철수씨 사건에 뛰어든 것은 변호사 시험 공부를 하던 1977년. 이씨는 1973년 6월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발생한 갱단 간부 피살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돼 체포된 뒤 1973년 6월 1급 살인죄로 종신형이 선고됐고, 교도소 복역 중이던 1977년 자신을 살해하려는 백인 갱단을 정당방위로 맞서다 살해했다며 제2의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한국인 청년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아시안청소년그룹이 무죄 운동을 펼치는 것과 때를 같이해 '새크라멘토 유니언지' 기자였던 이경원씨가 당시 고인과 함께 사건을 파헤치면서 전기를 맞았다.    고인은 이씨를 면담한 뒤 1차 사건이 잘못됐음을 확신하고 1977년 '이철수 구명위원회'를 결성했고, 이때부터 재판 서류 등을 샅샅이 뒤져 이씨가 7가지 위헌적 재판 절차의 희생양이었음을 밝혀냈다.    이 사건은 이경원씨의 폭로 보도가 이어지고 일본인 3세 야마다 란코씨 등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 커뮤니티가 대대적으로 가세한데다 유명한 인권변호사 레너드 와인글래스씨가 무료 변론을 맡았고 이씨와 비슷한 처지에서 어렵게 살아가던 한인들이 성금 20만 달러를 모으는 등 미국 땅에서 살아가는 소수민족이 하나로 뭉치는 계기가 됐다.    1982년 9월 3일 무죄 평결이 내려지고 제2의 사건도 1983년 사형판결을 무효화함으로써 이씨는 교도소에서 풀려났고, 이 사건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소수민족 연대 승리로 기록됐다. 고인은 2009년 사건 기록을 담은 책 '함께 부르는 노래'를 펴냈다.    고인은 1990년 귀국한 뒤 1993년까지는 'MBC 시사토론', 1993∼1995년에는 'KBS 1TV 심야토론'을 진행했다.    1995년 경기고 동기생인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의 권유로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했고, 원외 부총재로 임명됐다. 19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전국구 출마가 유력했지만, 지역구(서울 성북갑) 출마를 선언해 1997∼1999년 총재 비서실장을 지내는 등 김대중 총재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도 지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선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됐고, 2003년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3선 의원이 됐다. 2006년초 산업자원부 장관에 임명된 정세균 의원의 뒤를 이어 열린우리당 임시의장을 맡기도 했다.    2009년 한국유스호스텔연맹 총재, 이후 세계유네스코협회연맹 회장을 지냈다. 연세대 1학년 때인 1956년 소련군이 헝가리를 침공하자 대학교 친구인 이만섭(1932∼2015) 전 국회의장과 함께 학도의용군을 결성한 공로로 2006년 헝가리 십자중훈장을 받았다.    유족은 부인 김성수씨와 사이에 2남1녀(유승영·유수화·유대현) 등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7호실에 마련됐다. 5일 오전 발인을 거쳐 미국 서부에 있는 추모공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 02-3410-6917이철수 유재건 이철수 구명위원회 무죄 평결 무죄 판결

2022-12-01

[사설] 폭동 30주년…재도약의 기회로

한인 이민사의 가장 큰 시련이었던 4·29폭동이 일어난 지 30주년을 맞는다. 흑인 용의자를 무차별 폭행한 백인경찰에 대해 무죄 평결이 내려지면서 폭동은 시작됐다. 무죄 평결로 흑백간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고 폭도들의 파괴와 약탈은 한인커뮤니티를 기반부터 흔들어 놓았다. 아직도 당시의 분노와 울분이 남아 있는 피해 한인들이 많다.     아메리칸드림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상황에서도 한인들은 좌절하지 않았다. 폭동이 남긴 상처를 치유해 갔고, 새로 시작하는 계기로 삼았다. 다문화 사회에서 인종간 교류와 화합의 중요성도 뼈저리게 배웠다. 정치력 부재로 무력하게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던 억울함은 다수의 한인 정치인 배출로 이어졌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4·29의 교훈은 아직도 생생하고, 교훈은 항상 과제를 남긴다. 소수민족으로서 미국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커뮤니티의 미래를 위한 계획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2세들에게 폭동의 역사를 어떤 의미와 교훈으로 남겨야 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폭동의 잿더미에 일어난 한인사회는 남가주 소수계 중에서 가장 모범적이고 영향력 있는 커뮤니티로 발전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이제 폭동 30주년을 넘어 또 다른 30년을 맞는다. 역경과 시련의 지난 시간을 뒤로 하고, 재도약을 위해 다시 힘찬 출발을 시작해야 할 때다. 사설 재도약 폭동 폭동 30주년 한인 이민사 무죄 평결

2022-04-27

시위대 살해 10대에 '무죄'…배심원단 '정당 방위' 결론

모든 혐의 만장일치 무죄. 배심원단은 10대 청소년의 백인 2명 살해를 정당방위로 결론 내렸다.     19일 오후 12시10분(현지 시간). 위스콘신주 커노샤 카운티 법원에서 열린 공판에서 배심원단은 2건의 살인과 1건의 살인미수 등 5건 혐의로 기소된 10대 백인 카일 리튼하우스(18·사진)에게 무죄 평결을 내렸다.     전 혐의 만장일치 무죄였다. 리튼하우스는 지난해 8월 커노샤에서 흑인 남성 제이콥 블레이크가 경찰 총격으로 반신불수가 된 사건을 계기로 방화와 약탈을 동반한 블랙 라이브 매터(BLM) 시위가 벌어지자 동료 자경단원들과 함께 순찰하던 중 시위 참가자 2명을 총격 살해하고, 1명을 다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살해된 2명은 BLM 시위에 가담했으나 모두 백인이었고 총상 부상자 1명 역시 백인이었다. 폭동 시위 3일째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번 사건은 전국에서 총기 소유 권리와 자경단, 정당방위 여부 등에 대한 찬반논란을 야기했다. 배심원단은 26시간의 논의를 거쳐 리튼하우스의 총격 살해가 정당방위라고 결론 내렸다. 배심원 대표가 평결문을 읽어내리는 동안 리튼하우스는 눈물을 흘리며 변호사와 포옹했다.     리튼하우스는 지난 11일 공판에서도 “나를 공격하는 3명을 저지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을 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리튼하우스 변호인단은 피고인이 먼저 공격한 시위자들을 어쩔 수 없이 총격했다고 줄곧 변론했다. 생명에 위협을 느껴 방어했다는 것이다. 한 명이 스케이트보드로 그를 가격해 총격으로 맞서지 않았다면 자칫 리튼하우스가 죽을 뻔했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총상을 입은 가해자 한 명이 리튼하우스에게 먼저 총을 겨눴다고 증언했다. 순간 뒤에 앉아있던 검사가 고개를 떨궜다. 이번 재판의 결정적인 터닝포인트였다는 분석이다. 또 리튼하우스를 공격한 시위자 3명 모두 중범 전과자라는 점도 이번 평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살해된 조셉 로전범은 9~11세 어린이 5명을 강간한 아동성폭행범이었고, 살해됐을 당시에도 가정 폭행 혐의로 기소돼 보석금을 내고 나온 상태였다. 역시 살해된 앤서니 후버도 가정폭행 중범자였고 총상을 입은 게이지 그로스크로츠는 과거 취한 상태에서 총기를 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바 있다.       토니 에버스 위스콘신 주지사 책임론도 제기됐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을 비롯해 다수의 정치인이 그에게 주 방위군 투입을 재촉했으나 계속 거부했다.     검찰은 리튼하우스가 폭력적인 충돌을 유발한 난폭한 자경단원이라고 주장했다. 리튼하우스는 전과 기록이 없다.       이번 사건은 정치적 이슈로 비화됐다. 특히 평결을 앞두고 조 바이든 대통령이 리튼하우스를 두고 근거없이 “백인우월주의자”라고 비판해 거센 논란이 일어났다. 보수진영에서는 ‘대통령의 무책임한 언사로, 당장 사과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바이든은 평결 직후에도 성명을 통해 “화가 나는 일이지만 배심원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며 평결이 내키지 않는다는 반응을 우회적으로 비췄다.     대다수 주류언론도 리튼하우스에 대해 부정적었다. 통제불능의 미국 총기 문화를 상징하는 어린 자경단원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MSNBC의 간판 흑인 여성 진행자 조이 리드는 “담당 판사부터 백인우월주의자”라고 노골적으로 비판해 담당 판사 브루스 슈로더를 분노케 했다.         원용석 기자사설 카일 카일 무죄 무죄 평결

2021-11-19

시위대 2명 숨졌는데… 총 쏜 10대에 무죄 평결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대에 총을 쏴 2명을 숨지게 한 10대 청소년이 무죄로 풀려났다.    19일 위스콘신주 커노샤 카운티 법원에서 열린 공판에서 배심원단은 2건의 살인과 1건의 살인미수 등 혐의로 기소된 카일 리튼하우스(18)에게 모든 혐의에 대한 무죄 평결을 내렸다.   리튼하우스는 지난해 8월 커노샤에서 흑인 남성 제이컵 블레이크가 경찰 총격으로 반신불수가 된 사건을 계기로 방화와 약탈을 동반한 과격 시위가 벌어지자 백인 자경단원들과 함께 순찰하던 중 시위 참가자 2명을 총격 살해하고, 1명을 다치게 했다.   당시 만 17세에 불과했던 10대 청소년이 저지른 이 사건은 미국 사회에서 총기 소유 권리와 자경단의 역할, 정당방위의 정의를 둘러싼 거센 논쟁에 불을 붙였다.   전국의 시선이 집중된 리튼하우스 재판에서 배심원단은 26시간의 숙의를 거쳐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라는 피고인 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평결이 내려진 직후 리튼하우스는 눈물을 쏟았다.   그는 지난 11일 공판에서도 울면서 "나를 공격하는 사람들을 저지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을 했을 뿐"이라고 진술한 바 있다.   자신을 때리거나 소총을 빼앗으려고 하는 등 먼저 공격한 시위자들을 어쩔 수 없이 쐈다는 게 리튼하우스의 주장이다.   변호인도 리튼하우스가 먼저 공격당한 사실을 거듭 강조하면서 "생명에 대한 위협"을 느꼈기 때문에 방어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가 "공공의식이 강한 10대 청소년"이라며 옹호하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은 리튼하우스를 폭력적인 충돌을 유발한 "난폭한 자경단원"으로 묘사하면서 총격 사건 뒤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조사 결과 리튼하우스는 탄두를 금속으로 코팅해 목표물을 관통할 수 있도록 특수 제작한 '풀 메탈 재킷' 탄환 30발과 AR-15 스타일의 반자동소총을 미리 준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평결 결과에 반발한 일부 시민들은 법정 밖에서 소리를 지르며 반발했고, 한 여성이 바닥에 쓰러지는 모습도 목격됐다.   재판 과정에서 미국 사회는 두 편으로 나뉘어 팽팽히 맞섰다.   총기 소유권을 옹호하는 보수 진영에서는 리튼하우스를 영웅시하며 정당방위가 맞다고 주장한 반면, 진보진영에서는 그를 '통제불능의 미국 총기 문화'를 상징하는 어린 자경단원이라고 비판했다.     시위대 무죄 무죄 평결 총기 소유권 평결 결과

2021-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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